그는 손가락으로 원통 구조의 도서관을 가리켰다.
“아…….”
“참 웃긴 소리지. 실력도 없는 자 주제에, 있어 보여야 한다는 그딴 말이나 하고.”
“실력이 없어요?”
“처음 마법사가 된 이들은 직관적인 마법들밖에 쓰지 못했다지. 그래서 그때 만들어진 이 도서관은 책이 망가지지 않게 보존 마법이 걸린 것 말고는 다른 마법이 걸려 있지 않아.”
팔짱까지 낀 그는 매우 불만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뭐 그래도 그거라도 걸어 놓은 게 어디예요.”
“청소 기능까지 걸어 두었으면 어제 그렇게 난리 칠 일도 없었겠지.”
“아…… 청소.”
하긴. 자체적으로 깨끗해지는 기능이 있다면, 굳이 사람 손으로 쓸고 닦고 할 필요도 없었겠지. 관리도 쉬웠을 테고.
그의 말에 심히 동감하는지라, 난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도서관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나?”
“할 말이요? 그래도 도서관은 꽤 크고 좋은 거 같아요. 구역별로 잘 나뉘어 있는 거 같고.”
이미 아이들은 신이 난 건지 도서관 안으로 뛰어 들어간 지 오래였다. 한쪽에는 아이들이 볼 만한 그림책들도 있던지라 벌써부터 그곳에 자리 잡고 앉아서는 이런저런 책들을 꺼내 보고 있었다.
“또?”
“네?”
“또 할 말 없나?”
“어…….”
“유달리 깨끗하지 않나?”
내게 무언가의 대답을 바라는 것처럼 굴던 그가 결국 원하는 대답을 얻으려는 듯 입을 열었다. 아 그걸 말하는 거구나. 난 또 뭐라고.
“아! 깨끗하네요. 정리하느라 고생했을 거 같아요.”
“그렇지.”
“얼마나 사람들을 부려 먹으면 이렇게 깨끗하게 만들 수 있는 거예요?”
“……부려먹다니. 그리고 나도 조금 도왔다.”
“리안이요?”
“그래.”
그 말을 하고 싶어서 말한 거였구나. 아주 티끌만큼 귀엽네. 르델로가 누굴 닮았나 했더니 리안과 아주 판박이인 것 같다. 이런 면에서 보면 아빠와 아들이 맞단 말이지.
“의외네요.”
“다른 이도 아니고 벨라…… 아니 르델로가 함께 오게 될 텐데 함께 정리하고 싶었다.”
“오…… 그건 좀 감동이네요. 아이들이 엄청 좋아하는 것 같아요. 매번 정원에만 있다가 여기 오니.”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 말하도록. 또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말끝을 흐리는 그를 보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북쪽 별궁을 제외한다면…….”
절대 보여 주고 싶지 않은 게 그곳에 있는 것처럼, 황제는 계속해서 그곳에 대한 말을 무의식적으로 뱉어 냈다.
“어차피 겁이 많아서 다른 곳은 못 가요. 괜히 문제 생기는 것도 싫고.”
“그렇군.”
“아! 하나 바라는 게 있긴 해요. 그네를 별궁에 놔주실 수 있으세요? 조금 컸으면 좋겠는데. 둘 다 아직까지 그네를 보지 못한 모양이에요.”
이사벨라도 책에서 봐 오기만 한 그네. 보통 그네는 외부에 놓곤 했는데, 비가 오면 나무로 된 그네는 젖기 십상이고, 젖어 버리면 망가졌던지라 자주 수리를 해 줘야만 했다.
만드는 데에도 꽤 많은 금액이 들어가는데, 수리까지 자주 해 줘야 하니 보통의 가문에서는 잘 놓지 못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비를 맞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그네보다 세 배는 더 큰 그늘막을 쳐야 했는데, 그것 또한 부담이 컸다. 그래서 고위 귀족가나 재산이 풍족한 상인 가문을 제외하곤 보기 힘든 물건이었다.
“그네라.”
“네. 해 주실 수 있죠?”
“그 정도야 가능하지. 그것 외에는?”
“음…… 딱히 없는 거 같아요.”
“원한다면 뭐든 말하도록. 며칠 내로 황후에 대한 황명이 내려질 것이다. 그러니 그대에게 선물을 편히 줘도 되는 상황이지. 황후에게 주는 황제의 선물이 될 테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언가 떠올리려 해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별궁에는 충분하리만큼 많은 물건이 있었고, 샤샤의 물건 또한 빠짐없이 채워진 덕에 딱히 부족한 건 없었다.
“원래 그대는 물욕이 심한 사람이었다던데.”
“맞아요.”
저 말고 이 몸의 주인인 이사벨라요.
“그런데 왜 아무것도 바라지 않지? 아 분할로 말고 일시에 큰 걸 바라려는 건가?”
“사람이 살다 보면 끝날 때가 있더라고요.”
“끝날 때?”
“너무 많은 것을 가졌을 때 나타나는 회의감 같은 거요. 어느 순간 참 쓸모없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지금이 딱 그런 때이고요.”
물론 황제는 내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엄…… 그냥 질렸다는 거예요. 다 필요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단 거죠.”
“아. 그거군.”
오 조금 이해를 한 건가.
“보통의 것들은 모두 가져 봐서 그런 감정이 드나 보군. 걱정 말도록. 벨라. 그대 마음에 드는 걸로, 더 귀하고 좋은 것들로 준비해 주지.”
“아니요.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이미 충분히 해 주신걸요. 거기에 후작에게도 돈을 이미 지불하셨잖아요. 저를 데려오는 조건으로.”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걱정하지 말도록.”
남들 보기에 좀 그래서 그런가. 황후가 아무것도 받지 못하면, 뒷말이 나올까 봐?
“뭐…… 알겠어요.”
그런 거라면 받아들여야지.
“역시 그대가 원하는 건…….”
“네?”
“아니다. 잘 알겠다.”
아니 뭘 잘 알겠다는 거예요. 저 별다른 말 안 했는데. 오히려 무언가 알아낸 듯 뿌듯한 미소를 지으니까 더 찝찝하잖아요.
저기요. 폐하?
“아. 그러고 보니.”
“네!”
“신전에서 연락이 왔다.”
그가 나에 대해 오해하는 것 같아서, 그걸 풀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리안드로의 용무는 그게 아니었다.
“신전에서요?”
“그래. 벨라. 너를 보러 와도 되냐는 연락이었다. 아마 방문 목적에 샤넨시아도 있는 듯하지만, 어찌 되었든 공적인 용무는 그것이었다.”
“아아. 샤넨시아만 보러 온다고 할 수 없으니, 저를 보겠다고 한 모양이네요.”
무슨 말을 하나 했는데, 신전에서의 방문이라니.
언젠간 올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빠른 방문이었다.
‘아마도 마탑에서 이미 우리와 따로 만난 걸 알아서, 신전에서도 우리와 연락을 하고 싶은 거겠지.’
마탑보다는 신전 측이 내게 있어 더 호의적인 곳이었다. 마탑처럼 강제적으로 아이를 데려가려는 것도 없었고, 아이가 오면 오고, 가면 가는 대로 두었으니까.
또 매번 갈 때마다 샤샤도 즐거워했고, 언제나 아이 손에는 신경을 쓴 듯한 간식이 들려 있곤 했다. 하지만 결국 그곳에서도 아무 이유 없이 아이에게 잘해 줬던 건 아니었다.
그들은 아이를 연구하고 싶어 했다. 성력과 마력이 공존하는 몸으로 태어난 사람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신전에서는 대놓고 그 말을 해 왔다.
‘뒤로 음흉하게 구는 마탑보다는 나은 듯했지만.’
어찌 되었든 마탑이고 신전이고 둘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뭐. 그렇지.”
“마탑에서 날 보러 왔을 때에는 따로 안 물어보더시더니, 지금은 물어보네요?”
“마탑은 사과를 하겠다는 정당한 목적이 있었고, 신전은 정당한 목적이 없으니까.”
너무나 맞는 말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러네요.”
“그저 보고 싶다는 말은 이유가 되지 않아서.”
“음…….”
“보고 싶지 않다 하면 보지 않아도 된다. 그 정도는 막아 줄 수 있어. 나중에 정당한 이유를 가져온 이후에는 어찌 될지 모르나 지금은…….”
“볼게요.”
어차피 피한다 한들 피할 수 있는 게 아님을 알기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했다.”
“언제는 막아 준다면서요.”
“한두 번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니니까. 그들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고 싶은지 직접 부딪혀야 상황이 끝나겠지.”
“네.”
그들은 과연 뭐라 그럴까. 전 마탑주가 그랬던 것처럼 샤샤를 아예 보내 달라 할까? 아니면 또 다른 말을 할까.
뭐가 되었든 절대 샤넨시아를 떠나보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좀 이상하네. 새로운 마탑주는 샤샤를 지나칠 정도로 신경 쓰지 않아.’
지난번 만남에서도 느낀 건, 확실히 그는 온전히 나를 보기 위해 왔고, 온전히 나와의 이야기를 원했다는 거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서든 샤샤와 어울리기 위해 노력한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때였다. 내내 이야기하던 황제가 재미있는 일이라도 생각난 듯 한결 밝아진 얼굴로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마탑이든 신전이든 고고한 학처럼 목만 빳빳히 세우고선 황궁에 드나들지 않았는데, 그대와 샤넨시아가 온 이후부터는 뻔질나게 오겠다 연락하는군.”
“좋은…… 거예요?”
“재미있는 거지. 벨라, 그대가 생각해도 참 재미있지 않나? 대대로 황제가 호출해도 그들은 오지 않았어. 자신들만의 영역을 침범당하지 않길 바랐고, 자신들이 황권과 같은 권력을 지녔다 생각해서였지. 실제로 제국은 황권과 신전, 마탑이 균형을 이루고 있고. 그런데 그자들이 먼저 오겠다 연락하고 있어.”
“재미있긴 하네요.”
그의 말대로 제국에서는 세 개의 지배층이 팽팽하게 기 싸움 중이었다.
그들이 지나칠 정도로 샤샤에게 집착하는 것도 그 이유였다.
마탑은 이번 마탑주 일이 아니었어도, 과중하게 마도구의 가격을 올리는 것 때문에 민심을 잃은 상태였고, 하루가 다르게 마탑에 지원하는 마법사들이 줄어들어 미래가 없는 상태였다.
신전에서는 다음 성녀가 나오지 않아 강한 성력을 지닌 자를 다음 성녀로 강제로 앉혀야 하는 입장이었다. 두 군데 다 미래가 없기에 샤샤를 원했다.
‘유일하게 샤샤를 필요로 하지 않는 곳이 이곳 황궁이겠지.’
대대로 황제들은 그 두 군데를 견제했고, 힘의 균형을 깨뜨리고 싶어 했다.
마탑과 신전. 그들은 지나칠 정도로 오만했고, 때문에 신전과 마탑 어느 쪽에서든 잘못한 일이 있으면 제일 먼저 달려가 그들의 잘못을 꼬치꼬치 캐묻곤 했다.
그걸로 그들의 약점을 잡아야 하니까.
어찌 되었든 그런 상황인지라, 리안드로의 저 반응도 너무나 이해가 되었다.
“아주 재미있게 되었어. 처음에는 내가 벨라, 너를 돕는다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여러모로 그대는 내게 큰 도움이 되고 있어.”
“그러면 다행이네요.”
그때였다. 실컷 도서관을 돌아다니던 샤샤가 내게로 포르르 뛰어왔다.
“언니야!”
“응?”
“이제 돌아갈래!”
“왜 재미없어졌어?”
샤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재미없는 게 아니라면
스타베팅 돌아가자고 하는거지? 의아함에 샤샤를 보던 그때, 르델로가 팔을 바닥에 축 늘어뜨린 채 휘적휘적 걸어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까 낮잠 시간에 르델로는 제대로 못 잔 모양이다.
샤샤가 베개 취급 해서 일어난 게 아니라 그 전부터 일어나 있었나 보다.
“아아, 그러면 오늘은 이만 갈까? 또 오면 되니까?”
“응! 황제님 그래도 돼요? 다음번에도 르델로랑 언니야랑 또 와도 돼요?”
스타베팅 이용후기
글제목: